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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어간다는 것은?

마이파라다이스 2025. 6. 12. 23:41



* 기억을 잃어간다는 것은? *

기억을 잃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일을 잊는다는 의미를 넘어서, 자신이라는 존재의 일부가 서서히 사라지는 경험이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 자신을 정의하고, 관계를 맺으며, 삶의 의미를 만들어 간다. 따라서 기억의 상실은 정체성의 일부를 잃는 것이며, 동시에 세계와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는 고통스러운 과정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가끔 말한다. "잊고 살아야지"라고. 힘든 일이나 상처는 때로 잊는 것이 유일한 치유책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자발적인 망각과 점진적인 기억 상실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자발적인 잊음은 선택이고 회피일 수 있지만, 기억을 잃어간다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실이며, 자기 삶이 어딘가에서 조금씩 지워지고 있다는 자각이다.

치매에 걸린 노인이 손주를 더 이상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의 이름조차 헷갈려 하는 모습을 보면, 기억이라는 것이 단지 뇌 속 정보의 저장이 아니라 인간다움 그 자체임을 절감하게 된다. 그 사람이 예전에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여전히 주변 사람들이 기억하더라도, 정작 본인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 삶은 과연 누구의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기억을 잃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두 번의 이별을 겪는 것과도 같다. 하나는 과거의 나와의 이별, 그리고 또 하나는 지금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점차 사라지는 이별이다. 언어를 잊고, 얼굴을 잊고, 사랑했던 사람의 이름을 잊고, 마지막엔 자기 자신까지 잊게 되는 이 긴 여정은 무력함과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아주고, 함께했던 추억을 자주 이야기하며, 사라져가는 기억의 파편을 부드럽게 붙잡아주는 것이다. 기억은 사라질 수 있지만, 사랑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다. 때론 기억이 아닌 감정만이 남기도 한다. 기억이 흐려져도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나 다정한 말투는 마음 어딘가에 오래도록 남는다.

기억을 잃어간다는 것은, 결국 인간으로서의 삶이 마무리를 향해 나아가는 자연스러운 흐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과정이 외롭고 두렵지 않도록, 우리는 서로의 기억을 함께 지켜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잃어가는 기억 속에서도 누군가의 마음에 여전히 ‘나’라는 존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은, 삶의 마지막까지도 우리가 이어져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